보도자료국가보안법폐지 연속기고(한겨레)

관리자
2021-06-02
조회수 1401

1. 73년의 족쇄에 묶인 삶 그리고 영혼 _ 박석운(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상임공동대표·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2. 노동자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법 _ 양경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3. ‘국가보안법’ 마피아 게임을 끝내야 한다 _ 류문수(변호사·원불교 인권위원회 위원장)

4.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_ 민형배(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광산구을))



73년의 족쇄에 묶인 삶 그리고 영혼

등록 :2021-05-10 15:39수정 :2021-05-11 02:05


‘국가보안법 폐지’ 연쇄기고 _1

[왜냐면] 박석운 ㅣ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상임공동대표·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1948년 12월1일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 악법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치안유지법을 계승하여 제정되었는데, 심지어는 당시 <조선일보>조차 1948년 11월14일 사설에서 “대한민국의 전도를 위해서나 우리 국민의 정치적 사상적 교양과 그 자주적 훈련을 위하여 크게 우려할 악법이 될 것을 국회 제공에게 경고코자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국가보안법은 ‘정권안보법’으로 작동되었다.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평화통일론을 주창한 조봉암 후보가 이승만 후보에 이어 2위를 하자, 이승만 독재정권은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시켰다(2011년 1월 대법원, 재심판결에서 무죄 선고). 또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일당이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을 유혈진압하고 난 뒤, (나중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 선생을 그 배후조종자로 몰아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했던 것도 국가보안법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국가보안법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해낸 ‘반인권 악법’이다. 1973년 10월 중앙정보부는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를 고문 살해하고는 자살로 사인을 허위조작하였다(2006년 2월 서울고법, 국가의 불법행위 인정, 국가배상 선고). 또 1975년 4월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를 고문으로 조작해 인혁당 관련자 8명을 사형집행하였다(2005년 12월 대법원, 재심판결에서 무죄 선고). 그리고 1970~80년대에는 수많은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들을 고문해 간첩으로 조작하여 처벌하였다(대법원에서 재심 거쳐 무죄 판결된 사례 다수). 최근인 2013년에도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는데,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증거까지 조작한 사실이 들통나서 무죄 선고되기도 하였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양심·사상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훼손시키는 ‘반민주 악법’이다. 남과 북의 ‘모내기’ 장면을 그린 신학철 화백이나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비판한 ‘오적’ 시를 쓴 김지하 시인 등도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8억인과의 대화> 등 빛나는 저작을 통해 냉전 논리를 비판했던 리영희 교수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처벌되는 등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다. 인권변호사 한승헌 변호사도 1972년 9월 <여성동아>에 ‘어느 사형수의 죽음 앞에서―어떤 조사’라는 수필을 기고하였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한동안 변호사 활동을 못 하기도 하였다.

문화예술인이나 언론인, 지식인들만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민초들이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한 말꼬리를 잡아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했던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 사례 또한 매우 심각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국민이 의사 표현을 할 때마다 먼저 자기검열하는 상황이 내재화·일상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줄기차게 권고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1992년, 1999년, 2005년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도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또 국가보안법은 ‘반평화 악법’이다. 1971년 유엔에 남북한 동시가입과 북한의 실체 인정을 주장했다가 구속된 통일사회당 김철 위원장이나 <세대>지 1964년 11월호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을 주장하는 사설을 게재했다가 구속된 황용주 문화방송 사장 사건도 있었다. 그렇게 무리하게 탄압하였지만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였고, 촛불항쟁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민주주의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이제 지난 73년간의 기나긴 족쇄,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을 벗어던지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10만인 입법청원’이 시작되었다. 주권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드린다. 역사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날을 바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완성되는 날로 기록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94560.html#csidxab01747768c341bb6fe0f1719463969



노동자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법

등록 :2021-05-17 15:00수정 :2021-05-18 02:07

‘국가보안법 폐지’ 연쇄기고 _2

[왜냐면]  양경수ㅣ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민주노총은 북으로 가라!” 광화문광장 혹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집회를 할 때면 흔히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다. “노동조합 할 권리를 보장하라!” “최저임금을 인상하라!” “해고를 금지하라!”는 우리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보수단체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 혹은 정권과 기득권에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들을 향해 ‘빨갱이’라는 무시무시한 손가락질을 해왔고, 여전히 하고 있다.

바로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당한 요구조차도 냉전 시대의 논리로 귀결 짓고,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삶과 투쟁마저도 폄하하고 매도하고 탄압해왔던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70여년간 국가보안법의 주요 탄압 대상은 우리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자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노동자들의 정치적 단결과 자주적 활동을 억눌러왔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조활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탄압했던 사례는 부지기수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설립하기 이전에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을 ‘반국가단체’로 탄압했고, 사용자 쪽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투쟁하던 현대자동차 노동자를 지원하던 진보세력을 간첩단으로 조작해 탄압했던 것도 국가보안법이었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필독서 구실을 했던 <전태일 평전>조차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규정하여 수사하고 잡아들였으니,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1948년 이래 얼마나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이 법으로 탄압받았는지, 또 얼마나 많은 노동조합들이 이 법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그 정확한 숫자와 통계조차 정리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뿐만 아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이런 식의 노조탄압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 자체를 불온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 결과,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이다. 법과 언론, 사회적 분위기로 노조활동에 ‘종북세력’이니 ‘이적행위’니 ‘빨갱이’니 하는 딱지를 이토록 쉽게 붙여왔으니 일견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기 어렵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노동운동 탄압’은 시기와 정세에 따라서 그 강도만 달라졌을 뿐, 언제든 악용되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거세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여 찬물을 끼얹곤 했다.

민주노총은 올해 하반기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 양극화 문제’,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이고 결연한 선언이다. 말 그대로 ‘사회 대전환’을 위한, 한국 사회의 ‘구조’를 그 뿌리부터 바꿔나가겠다는 투쟁에 민주노총이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반기 민주노총의 총파업 또한 국가보안법과 같은 하늘을 이고서는 불가능하다. 지난 5월10일부터 진행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동의청원’에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늦어도 한참 늦었기에 지금이라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우리 노동자들은 모두 갖고 있다. 돌아보면 2004년 노무현 정권 시절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목전까지 다다랐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다. 살아남은 국가보안법은 이후로도 단 한 순간의 쉼 없이 지금 이 순간까지 노동자들을 탄압해왔다. 우리 노동자들 그 누구도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는 평가를 전혀 믿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진짜로 없애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스스로도 ‘국가보안법 폐지’ 소신을 분명히 밝혔던 인권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아닌가?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폐지되고 말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이 순간에, 우리 노동자들뿐 아니라 전체 시민들께서 함께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95509.html#csidx67b5e1c833c56caa60c4afb2897bc77




‘국가보안법’ 마피아 게임을 끝내야 한다

등록 :2021-05-24 17:24수정 :2021-05-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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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 연쇄기고 _3

[왜냐면]  류문수ㅣ변호사·원불교 인권위원회 위원장

2020년 10월께 상영되었던 ‘스릴러 영화’ <게임의 전환>이 뇌리에서 계속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마피아 게임’을 빌려 국가보안법을 설명한다. 우리 사회 안에 ‘빨갱이를 사냥하라!’는 잔인하고 끔찍한 게임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견고하게 내재되어 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당장, 인권운동에 몸담고 있는 나부터도 ‘내 생각과 표현을 스스로 억제해왔다’는 ‘자기 검열’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어 놀랐다.

국가보안법은 이런 법이다.

우리가 좋든 싫든 모두 마피아(빨갱이) 게임의 참가자가 되어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 마피아를 찾아내고(자기 검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마피아를 찾아내기 위하여 나 스스로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모두 의심하게 한다(공포의 내재화). 개개인의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 나아가 학문의 자유 영역까지 간섭하고 억압해왔다.

이제, 국가보안법에 의해 시작된 마피아(빨갱이) 게임을 끝내야 한다.

이미 2004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문’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국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2004년 8월26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 의미가 탈색되었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는 다시 국가보안법 7조 위헌법률심판사건 심리가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가 종전 2004년의 결정을 변경할 것인지 관심이 모인다. 유엔 인권이사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 관련 기구들도 꾸준히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해왔다는 점에 비춰 본다면,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 결정은 우리나라 인권의 측면에서,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국격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21대 국회에서도 적폐청산, 촛불혁명의 정신을 잇는 맥락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 국가보안법 7조 삭제 등 개정 법안에 관한 발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우려된 일종의 한시법이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어 그동안 인권유린과 사상탄압의 도구로,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남용·악용되어 왔다. 지난 세월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수많은 노력이 좌절된 사례가 있는 만큼 최종적인 결실을 볼 때까지 방심하거나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1월5일 한 언론사 창간 기념 서면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 1998년 유엔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국가보안법이 유엔의 인권규약 위반 사실을 재확인하는 등 국제 인권규범과도 충돌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돼도 현행 형법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며 폐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민정수석 시절 공수처 설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회고했다.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해서는 “더 뼈아팠다”고도 했다. 그렇기에 대통령으로서의 입장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져야 할 것이다.

올해는, 이 사회를 통치하는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3년이 되는 해다. 이미 사문화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당장 며칠 전에도 통일 문제를 연구하는 민간연구소 연구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세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4·27 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 화해·협력의 구체적인 사항들에 합의했고, 평화와 통일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런 소중한 합의들을 실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제정 목적 자체가 분단 대결체제 유지 내지 강화를 전제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그 가장 밑바탕에서부터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원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포은’과 ‘법률은’을 이 땅에 뿌리내리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96462.html#csidxa4429dd481a8151adedb8e6d6b72c0f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등록 :2021-05-31 17:56수정 :2021-06-01 10:20


‘국가보안법 폐지’ 연쇄기고 _4

[왜냐면] 민형배 ㅣ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광산구을)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제가 준비한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의 본문입니다. 단 한 줄이면 충분했습니다. 무려 74년 동안이나 시민의 삶을 옥죄었던 악법을 없애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945년 해방으로 일본은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었던 치안유지법의 망령은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가 자국 시민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제정 당시부터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시대 잔재를 계승하는 부끄러운 법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은 부당한 권력유지에 국가보안법을 악용했습니다. 간첩사건을 날조하고, 수많은 민주인사를 고문하고 가두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앗아갔습니다. 이미 재심 등을 통해 다 밝혀진 사실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정통성이 허약한 정권보안법이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시민적 공론이 뜨거웠습니다. 그럼에도 국회는 “폐지한다”는 단 한 줄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입법노동자로서 아직껏 이 악법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참담하고 안타깝습니다.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인권위는 국가보안법이 “제정 과정부터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며 “수차례의 개정 과정도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법률의 규범력이 부족한 법으로서 그 존재 근거가 빈약한 반인권적 법”이라고도 했습니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은 몇 개 조문 개정으로는 문제점들이 치유될 수 없고, 그 법률의 자의적 적용으로 인권을 침해”했으며, “규정 자체의 인권침해 소지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켜 왔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전면 폐지’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나라가 어려움에 허덕이는 상황 속에서도, 정부와 시민이 힘을 모아 모범적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점차 극복해 나가는 중입니다. 한국은 위기에 강한, 단단한 나라입니다. 굳건히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토대가 국가보안법 폐지로 절대 흔들리거나 무너질 리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의 토대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공론장 형성을 파괴하고, 시민들 간의 연대를 방해하며, 사상의 자유시장을 폭력으로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되레 국가를 허약하게 만드는 ‘국가허약법’입니다. 

 국제적으로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을 맡은 바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엔의 자유권규약위원회와 사회권규약위, 고문방지위 등 국제사회의 수많은 국보법 폐지 권고를 무시해왔습니다. 폐지는커녕 단 한 줄도 고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최근 단 열흘 만에 국보법 폐지 국회 입법동의청원에 10만명이 동의했습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청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국회가 더 이상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말라는 시민의 명령입니다. 시민들의 양심과 인권의식을 믿고 나서라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의 뜻을 이어받은 21대 국회는 시민의 이 명령에 응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민들의 인권 감수성에 발맞춰 시민들에게 정치·사상·표현의 진정한 자유를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은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뜻을 국회는 받들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국회는 시민들과 함께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구시대적이고 반인권적인 야만은 땅속 깊숙이 묻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을 꾸려내야 할 때입니다. 

 국회는 변화한 세상, 한층 높아진 시민의식을 입법으로 구현할 책무가 있습니다. 세계 속에서 높아진 우리의 위치, 더 크게 도약할 대한민국의 제도 인프라를 정비해야 합니다.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반인권적 야만은 주저 없이 땅속 깊이 묻어야 합니다. 그 일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국가보안법 폐지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 열 글자면 됩니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97416.html#csidx29ccdf718236534bcaf7e9486fcb0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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